[프레다 공정무역 활동기] 필리핀에서 온 편지

프레다 재단 활동기 1

[이 글은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블로그에 게시 된 글입니다.]
http://afn_01.blog.me/220310893844

‘그래. 떠나자!’

작년 2월이었습니다. 하루의 24시간이 부족하고, 나의 의사와 무관한 일들로 하루가 등 떠밀리듯 지나가고 있었죠. 일 외에도 갖은 부정적인 이슈들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소모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까요. 하루에도 10번씩, ‘그래 떠나자’라는 말이 버릇처럼 툭툭 튀어나오곤 했어요. 그리고 본능적으로 ‘올해가 마지막이다! 올해가 지나면 떠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죠.

또한, 떠나자고 내뱉는 만큼 자신에게 매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하루를, 어떤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 걸까?”

저는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소비와 행동이 누군가의 힘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환경이나 타인의 삶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를 찾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1년 정도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저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우선 떠나보자, 다만 나의 그릇이 찰 수 있도록 의미 있는 활동도 해보자’는 목적으로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로부터도 여러 단체를 추천 받았죠.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PREDA Foundation(이하 프레다 재단)이었어요. 설립자인 Shay Cullen 신부님께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고, 한국과도 공정무역 건망고 수출 건으로 연계되어 아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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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겠다고 공수표를 날리고 프레다 재단이 있는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바뀌면서 나의 시간도 급변하기를 희망하면서요.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에서도 고속버스로 5시간을 달려야 나오는 올랑가포(Olongapo), 이곳에 프레다 재단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강렬한 햇살과 반짝이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죠.

이런 곳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분명히 행복하겠지? 이러한 저의 기대는 이곳에 도착하고 첫 번째 주에 산산이 부서졌어요.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가족 내 성적학대를 피해 프레다 재단으로 피신 온 13세 여자 아이였습니다. 공정무역이 주 사업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 재단의 가장 주 사업은 성매매 여성과 아동학대 피해자를 구하고 그 사람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는 10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용산구처럼 미군기지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성매매 업소들이 활성화되었고, 불법 인신매매를 통해 필리핀 여성들이 착취되고 있었죠. 재단의 시작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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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활동 끝에 프레다 재단은 단순히 피해여성들을 구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국내외에 포주들을 구속하기 위해 경찰들과 협력하고,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법률처리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돌아갈 가족이 없는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거주지 제공 및 직업교육과 기초교육, 정신적 치료를 위한 트라우마 교육까지 지원하고 있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프레다 재단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권리를 익히고, 학대를 경험할 시 피할 수 있도록 예방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돌며 학생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 프레다 재단은 공정무역분야는 물론 인권재단으로 유명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인턴과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올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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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군부대는 프레다 재단의 캠페인으로 철수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미군은 떠났지만 유럽과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사업이 활성화되었습니다필리핀 성매매 피해여성이 가장 많이 팔려가는 곳은 한국이에요. 가끔 회의 때 이 내용이 나오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자신에게 반문합니다. 그러게요.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프레다 재단에서의 첫 주가 지나고, 한국에서보다 더 복잡해진 생각을 잔뜩 짊어진 채 공정무역팀과 망고나무 관리를 위해 아이타 부족(Aeta communities)이 사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열심히 망치질을 하다가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눴죠. 공정무역이 프레다 재단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궁금했거든요. 팀원들이 말해주었습니다. 공정무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다시 보너스로 농민에게 주어지고, 성매매 피해자 여성들과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재활을 위해 사용된다고요. 그리고 공정무역을 하지 않고 망고를 파는 것이 더 편하긴 하지만, 프레다 재단과 함께 공정무역을 함으로써 환경도 보호하고, 인권과 공정무역에 대한 교육을 함께 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그 결과 공동체가 변화되는 것을 보면 본인들의 일이 너무 힘들지만, 만족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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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공정무역을 통해 소수민족의 삶이 어떻게 개선되는지를 볼 수 있겠구나’고만 예상했지, 이들의 삶이 저의 삶과 연계되어 있다고는 머리로는 의식한 만큼 피부로 와 닿지는 않았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저의 구매행위가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 제 몸에 끼치는 영향,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이 타국에 끼치는 영향을 낯선 곳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 달. 함께하면서 단순하지만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공정무역’이 세계를 바꿀 해답이어서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돕고 있는 성매매 피해자와 아동학대 피해자소수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방법 중 하나일 뿐이에요. 그리고 공정무역이 실제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열과 성의를 다 하는 것이고요.

현재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기본적이지만 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취지는 잊은 채 세련돼 보이는 허상만을 좇았던 예전의 자신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새롭고 신선한 단어나 현상들을 통해서 무언가 내 안의 결핍을 해결 수 있다는 착각. 본질을 잊고 있었던 자신이 떠올랐어요.

글로 보고 느끼는 것과, 내 살결로 현장을 경험하는 것의 차이.

첫 달은 이렇게 자기 반성들로 지나갔습니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공정무역 팀의 활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글쓴이 최영인(Choi, Young In). kind.of.tea@gmail.com

‘영웅본색’을 보고 처음 울었고, ‘X_file’의 멀더가 이상형

‘배철수의 음악캠프’,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과 함께 자아정체성을 형성.

80년대 팝송과 독서를 좋아하고,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 것이 행복한 1인.

인생목표는 85세까지 우주정복.

그 이전의 단계로 내 주변이 행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는 중.

차 한잔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다 결국 지속가능한 삶을 살자고 결심.

어떤 삶이 자신과 맞는지 경험을 통해 알아보고자 현재 유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