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다 공정무역 활동기] 필리핀에서 온 두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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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블로그에 게시 된 글입니다.]
http://afn_01.blog.me/220312791585

“여기는 당연히 유기농이야. 나라면 힘들어서라도 농약 뿌리러 못 가.
이래서 몬산토가 헬기로 농약을 뿌리는 걸 농부들이 거절하지 못하나?
아니.. 이분들은 왜 신발을 안 신었는데 나보다 잘 타지?
바람.. 바람 어딨니. 작대기는? 나 물 좀, 아이고 나 죽네.“

이번 주는 망고 농장에 나무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고 하여 신이 나서 쫓아왔는데… 이런… 농장이라 함은 당연히 우리나라처럼 구역이 정리된 하나의 지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저 정글이었다. 웬만한 산은 한걸음에 타는 나지만… 마른 모래로 이뤄진 필리핀의 거친 산 중턱 여기저기를 미끄러져 가며, 없는 길을 만들어가면서 망고나무들을 찾아 넘버링을 하는 내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프레다 재단은 1975년부터 공정무역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현재 필리핀 전역에 흩어진 50그루 이하의 망고나무를 소유한 소규모 농부들을 대상으로 유기농 망고를 관리하고 있다. 대략 8천 그루의 나무들에 번호를 매기고 모니터링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프레다의 공정무역팀과 함께  아이타부족의 주거지 중 한 군데인 루미바오로 왔다. 농부가 자신의 땅에 몇 그루의 망고나무가 있는지 프레다 재단에 알려주면, 프레다 재단의 공정무역팀은 현장으로 나와 일일이 품종을 확인하고 망고나무 지도를 완성한다. 신청이 완료 된 망고나무에는 각각의 번호가 주어지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생산자 추적부터, 해충 방지, 불법거래 차단 등 추후관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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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농부와 함께 산을 타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망고나무마다 넘버링을 한다.
강렬한 햇살에 피부는 점점 따가워지고, 팔과 다리는 가시나무들로 잔뜩 긁히고,
준비한 물은 떨어지고,,, 땀은 물 흐르듯 하다.

“영인! 점심 먹으러 내려가자!”
“예! 근데.. 점심 먹고 다시 올라오는 거죠?”
“당연하지? 잠시 쉬고 오후 작업을 해야죠.”
“그럼 왜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는 거죠? 이 높은 산을 다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잖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저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어쨌든 사서 먹는 것보다 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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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팀과 아침에 시장에 들러 장본 쌀과 고기, 채소를 들고 근처의 농가로 갔다.

근처에 사는 농민들과 가족들이 찾아왔고, 우리는 음식이 만들어질 동안 사람들과 몸짓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워낙 외진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적다 보니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때 도날도가 말했다. “영인 이 사람들이 널 궁금해해.” 그래서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나눴다. 그것뿐인데 왜 이렇게 수줍어하는 걸까? 이들은 우리 일행을 너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도날도. 이들은 원래 이렇게 외부인에게도 친절한가요?”

“아니.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우리가 망고를 팔아달라고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죠. 왜냐하면 거대 자본들이 그동안 불공정 거래를 통해 이들을 착취해왔기 때문이에요. 이득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망고를 팔지 않는 것이 낫다고도 했었어요. 하지만 우리와 함께한 오랜 시간으로 인해 지금은 우리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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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부인이어서가 아니라 공정무역팀과 함께여서 환영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공정무역을 접하면서 답답해한 것들이 풀렸다.

그동안의 난 “공정무역? 공정하게 거래하는 거 아니야?
스타벅스도 하는 게 공정무역이라며? 그냥 돈을 더 주는 거지?
그냥 기업이 자신의 이윤을 사회공헌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포기하는 건 아닌가?”
이렇게 친구들과 공정무역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기사와 논문, 관련된 단체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정무역에 대한 기본 정의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글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것과 나의 오감을 활용하여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공정무역은 단순히 적정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수입, 교육, 의료 등 복지까지 지원하고 자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는 것이다. 신뢰가 기반이 된 사회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을 통해 이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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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만들어진 점심. 손님이 왔다고 완전 잔칫상을 차려주셨다.

식탁 위에 커다란 바나나 잎을 깔고 그 위에 밥과 파파야와 함께 끓인 닭고기를 잔뜩 올려서 다 같이 손으로 먹는다. 손도 안 씻고 어떻게? 라는 생각은 잠시. 너무 지쳐서 아무 생각 없이 우걱우걱 먹었다.

너무 급히 먹었나. 목이 탄다. 물이 귀한 이곳에서 물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지 않을까 그저 두리번두리번하는 나를 보더니 마리오네 할아버지가 내게 물통을 주셨다. 음? 이건 맛이 좀 다른데? 산이어서 그런가?

그때 로져가 이야기해주었다.
“영인! 이건 물이 아니고 코코넛 워터야. 이온음료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고 보니 식탁 옆에는 코코넛 잔해들이 잔뜩 쌓여있다. 아 물 대신 이걸 마시는구나?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코코넛을 반으로 잘라 속에 남아있는 코코넛 젤리를 디저트로 주었다. 완전히 큰 덩어리 하나를 숟가락에 꽂아 수줍게 건네주시는 그의 모습에 미소가 그득그득하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한 입 먹으며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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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엄청난 크기의 나무에서 어떻게 망고를 수확하는 거죠? 그리고 수확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 거친 산속에서 어떻게 망고를 들고 이동하는 거에요?”

갑자기 꼬맹이 하나가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온다. 기다란 작대기를 들고 하늘을 훠이훠이 젓는다. 아. 우리나라에 감 따는 기술하고 비슷하네, 그래도 그 무거운 망고를 들고 내려오는 것도 일이잖아요. 하지만 이 거래로 인해 내 가족이 점점 좋은 삶을 살고 있다며 말하며 그들은 수줍게 웃었다.

오. 이 기세를 몰아 오후 작업을 한번 해볼까?

오후의 햇살은 더 강렬하다. 내 몸의 모든 수분이 증발하고 정신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상쾌하다. 저 멀리 하늘 한번 바라보고 허리를 한 번 펴고 다시 나무마다 넘버링을 하고…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내 몸을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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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길이 없고, 우리에겐 빛이 없어서 5시쯤 오늘의 일을 정리했다.
해가 떠 있을 때 마을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방에 들어있는 물을 모두 마시고, 흘릴 수 있는 모든 땀을 흘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
해가 질 때쯤 산을 등지고 후들거리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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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다 재단의 숙소로 받은 아이타 부족의 전통가옥.

대나무와 바나나 나뭇잎으로만 만들어진 집이다. 수도도 전기도 없다. 그래서 이곳은 밤이 일찍 온다. 오후 6시만 넘어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칠흑 같은 밤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래서 옛사람들은 별자리를 읽으며 길을 걸었구나. 하지만 낭만도 잠시.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그때 짜잔 하고 나타난 솔라라이트.
프레다 재단에서 가정마다 1~2개씩 제공한 휴대용 태양열 전구가 켜졌다.
그저 머리로 알고 있을 때에는 그렇구나, 이런 것들도 지원하는구나 했었는데…
어두운 밤에 직접 사용해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에 전구를 켜니 다시 동네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천장에 전구를 매달고 밥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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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별을 보는데 별안간 술을 권하는 공정무역팀.
“괜찮아요. 전 술 별로 안 좋아해요.”
“영인! 잠들려면 마셔야 해. 엄청나게 춥기도 하지만 새벽 4시부터 수탉이 울어서 잠을 잘 수 없을 거야.”
“에이… 지금 평균기온이 30도인데 밤에 추워봤자죠! 전 괜찮아요”

 

실수였다. 술을 마셨어야 했다.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진 듯 시간별로 몸이 얼어서 깰 수밖에 없었다. 새벽 4시부터 닭들이 울거라더니… 이미 새벽 2시부터 닭과 동네 개들은 울고 있다. 내 몸은 얼고 있다. 대체 이들은 여기서 어떻게 생활하는 거지? 매일 이렇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덜덜덜 떨다 또 다시 하루가 밝았다. 어젯밤의 추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맑고 따뜻한 아침.

 

우리는 다시 망고나무에 넘버링을 하러 떠난다.
아직 5천 개가 남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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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다 재단의 소수부족 지원 내용

 

  1. 적정가격으로 망고 거래하기: 일반 도매가의 3배 이상의 수준으로 모든 종류의 망고를 구매하고 모든 구매비용은 현장에서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대기업의 경우 지급비용도 적고, 상처 난 망고는 구매하지 않고, 구매가격을 늦게 지급하는 경우가 잦음.) 또한 프리미엄 보너스를 제공해서 가계에 도움을 주고 있음.
  1. 소수 부족 권리 찾아주기: 필리핀의 경우 등기부 등본 같은 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몇 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살아온 원주민들이 외부인에게 땅을 뺏기는 경우가 잦다고 함. 프레다 재단은 법적 문서작업을 지원하여 현재까지 450만 평 이상의 땅을 되돌려 주었다고 함.
  1. 아동 노동 방지하기: 여성과 아동 인권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가정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장학금과 교육물품을 제공함
  1. 비수기 소득 지원하기: 염소, 소와 같은 가축을 제공하거나 트라이시클과 같은 교통수단을 지원하여 망고를 수확하지 않는 시절에도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함
  1.   건축물 지원하기: 초등학교 건축과 자연재해로 손상된 집을 보수해 주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는 휴대용 태양열 전구를 제공함

글쓴이 최영인(Choi, Young In). kind.of.tea@gmail.com